사람마다 부담 없이 사재끼는 금액 범위가 있는 것 같다.
나의 범위는 7000원에서 30000원 사이 쯤인 것 같다. 7000원 아래로는 몇 백원을 그렇게 계산해 대면서, 8000원 쯤부터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2~30000원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또 할인 쿠폰을 아주 열심히 찾아본다. 커피 생두는 대부분 그 범위 안에 있다.
요즘 내가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비상금을 쓸까 말까 시도 때도 없이 고민하는 커피콩은 더블유빈 에티오피아 내추럴들이다. 결혼 전의 나 같았으면 이미 50kg 정도 쌓아뒀을 게 분명하다. 사실 결혼 전이라면 콩보다 로스터기를 50만원 아래 하나, 100만원 위로 하나 이렇게 사두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애초에, 비싼 카페를 그냥 주구장창 가서 로스팅에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을 지도?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코케 허니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내추럴
에티오피아 구지 케챠 내추럴
그리고 가끔 사고 싶어서 쳐다보고 있는 과테말라 엘 인 헤르또 버번...
위에 적은 에티오피아 콩들은 행사 중이라 1kg에 12,000원 밖에 안 한다. 함벨라는 모르겠는데 코케 허니와 케챠 내추럴은 12,000원에 살 수 있는 때가 언제 또 올지 모르겠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라고 느껴져서 자꾸 5kg 10kg씩 사고 싶어지지만 1년 동안 그 많은 생두를 다 볶아 먹을 리가 없다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참고 있다. 그리고 케챠는 한 번 먹어본 적도 없는데 잔뜩 샀다가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우선 1kg만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내일 오면 바로 볶아봐야지.
코케 허니는 정말 달다. 벌써 1kg를 거의 다 먹었는데, 두 번째인가 유일하게 발효취가 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볶았었는지 모르겠다... 그치만 발효취가 조금 나더라도 괜찮을 만큼 맛이 좋다. 상쾌한 산미에 꿀 같은 단 맛, 그리고 꽃향인지 과일향인지 좋은 향이 잔뜩 난다. 심지어 모카포트로 내려도 그 향과 맛이 살아 있다.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져도 맛있고 심지어 물을 많이 섞어도 맛있다.
함벨라는 컵노트에 적혀있던 살구, 자두? 맛이 나긴 하는데 1번으로 느껴지는 건 쓴 맛이었다. 그래서 자몽이 적혀있는 거 아닐까 싶다. 그와 동시에 아주 달콤한 꿀 맛이 돌면서 발효된(썩은) 살구? 자두? 맛이 난다. 호불호가 꽤 갈릴 것 같은 특이한 맛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약간 꾸덕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시다모 특성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발효취가 코케 허니와는 다르고 진하게 느껴져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좀 들었다. 그래서 장바구니에서 뺐었다. 하지만 계속 마시다 보니, 커피 맛도 모르고 쓴 아이스 에스프레소를 매일 같이 챙겨 먹던 때가 생각나며 이것도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간 질릴 것 같지만.
케챠는 어느 블로그에서 아이스로 내려 마시면 아내도 못 알아볼 정도라고 했는데 너무너무 너무너무 궁금하다. 얼죽아인 나에게 인생 커피가 되어 줄까 싶어서 말이다.
이렇게 에티오피아 내추럴을 줄기차게 마시며 생두를 백만 키로 정도 사놓고 싶은 마음으로, 어제 볶은 아체 만델링을 마시니 상큼, 상쾌한 느낌이 그리워져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도네시아 생두도 아직 4kg는 남아 있을텐데. 만델링들은 이미 거의 다 먹었고, 남아 있는 콩들은 전부 스페셜티 급들인데 왠지 손이 안 가서 큰일이다. 에티오피아 콩들한테도 언젠가는 질리겠지.
사실 어제 아침에 결국 진공포장기를 질러버렸다. 콩이 많아지니 보관이 점점 신경쓰였다. 아직 뜯지 않은 생두들도 지퍼백 타입이 많고 아직 골라내지 못한 벌레콩 곰팡이콩들과 함께 두는 게 여간 신경이 쓰였는데, 코케 허니를 4kg 더 주문하며 진공포장기도 주문해버린 것이다. 싼 것도 아니고 10만원이 넘는 건데... 그래도 이건 야채나 고기 보관할 때에도 많이 쓰면 되니까, 라며 합리화하며 공금으로 구매!! 이제 엄마한테 콩 줄 때에도 가스 좀 빼고 나서 진공포장해서 주면 되겠다!
아무튼... 생두를 더 살까 말까 매일 눈을 뜨자마자 고민하기 시작해서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고민하고 있다. 일단 함벨라는 살짝 혹 하기는 했지만, 한 두 번 볶을 만큼만 진공포장해두어서 생각날 때 볶아먹고, 도저히 더 먹고싶어진다면 그 때 좀 비싸더라도 제 값 주고 사먹기로! 일단 탈락이다. 코케 허니는 많이많이 사놓아도 괜찮을 것 같지만 매년 새로운 콩이 나올테니 올해 먹을 만큼만 쟁여두자. 뜯지 않은 5kg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케챠를 더 사게 된다면 그 때 1~2kg만 더 사기로! 케챠는 먹어보고 코케 허니 급으로 맛있다면 4kg 정도 더 사야겠다.
이제 쌓여 있는 생두들을 열심히 핸드픽해서 내일 올 진공포장기를 사용할 준비를 해야겠다. 진공포장기도 샀으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생두를 받는 족족 핸드픽해서 싹 다 진공시켜놔야지!
그나저나 하나린님은 어쩜 그렇게 자료를 마치 책처럼 정리해서 올리시는지, 대단하신 것 같다. 업이라 그렇다고 치기에는, 나는 과연 내 일에 대한 자료를 저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다른 건 하지 말고 자료만 만들라고 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나도 조금 더 부지런해져서 뭐라도 남겨놓을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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